아이폰 13 미니→ 15 프로 사용기

딱 2년만에 핸드폰을 아이폰13 미니에서 15 프로로 바꿨다. 결론은 맨 뒤로

# 13미니

나에게 핸드폰이란 자고로 ‘핸드’ 안에 들어와야 ‘핸드폰’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2년 전에는 13 미니를 선택했다.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와 가벼운 무게, 적당한 배터리와 준수한 성능까지 출시 당시에만 해도 나에게는 완벽한 폰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특히 iOS 16 업데이트 이후 크게 세 가지 불만점이 생겼다.

우선 배터리. 12 미니 대비 배터리 지속 시간이 많이 개선되었고, 처음 1여년 간은 불만 없이 사용했다. 그러다 배터리 성능 상태가 저하되기 시작하고, iOS 16의 형편없는 최적화로 체감되는 배터리 지속 시간이 수직 낙하했다. 작년 초에 호구처럼 맥세이프 배터리 팩도 구매했지만 하루 종일 외출하는 날에는 그마저도 부족할 때가 많았다.

두 번째는 카메라. 12 프로 맥스의 센서 시프트 광각 카메라를 그대로 가져온 덕분에 1배율 12MP 사진은 적당한 품질을 보여주지만, 망원 카메라의 부재로 디지털 줌을 당길 때에는 어김없이 심각한 화질 저하가 발생했다. 요즘 스마트폰 카메라가 다 그렇긴 하지만, 광각 카메라의 초점 거리가 26mm로 사실상 초광각에 준하는 카메라기 때문에 음식 사진이나 인물 사진에 필요한 50mm 근방의 광학 2배줌의 부재가 치명적인 단점이라 하겠다.

세 번째는 성능 부족. 동시대 갤럭시와 적어도 2년의 성능 격차가 있는 A15를 AP로 사용했는데 대체 무슨 소리인가 하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램 용량, 방열 설계, OS 최적화 등 제반 환경까지 생각하면 종합적인 체감 성능은 결코 만족스럽지 않았다. 미니의 작은 면적으로 인해 6인치대 모델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방열 성능, 그리고 iOS 16 이후의 SW 문제로 인물 사진 연사시 발열이 심하게 올라왔고 촬영 간 버벅임도 상당했다. 4GB 램으로 인해 잦은 앱 리프레시, 특히 지도앱의 미친듯한 리프레시도 매우 성가셨다. 물론 구글맵은 멀쩡한데 카카오맵이나 지도만 리프레시가 갖은 걸 생각하면 앱 자체 문제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미니의 압도적인 휴대성으로 종합적인 만족도 자체는 높았다. 나에게 휴대성은 위의 단점을 상쇄할 만큼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 15프로

13 미니에 슬슬 불만이 많아지던 차에 15 프로가 공개됬다. 전작보다 많이 가벼워진 무게, 관성 모멘트 변화로 더더욱 가볍게 느껴지는 체감 무게, 측면부 곡률 변경으로 좋아진 그립감, 디지털 줌 없이 센서 크롭으로 초점 거리 13/24/28/35/48/77mm 지원 등등 약간의 휴대성만 양보한다면 미니의 단점을 모두 해결해줄 수 있는 특장점을 가진, 나에게는 완전체에 가까운 핸드폰으로 보였다. 특히 내년 아이폰 16 프로부터는 120mm 5배 폴디드줌 지원을 위해 화면 크기가 6.1인치에서 6.3인치로 증가한다는 소식이 있기에 휴대성과 카메라 성능을 모두 챙길 수 있는 마지막 프로 모델이라고 생각했기에 이거는 무조건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하필이면 기초군사훈련 기간이랑 사전예약 기간이 겹쳐서 쿠팡에서 물량 잡기, 또 하염없이 기다리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내 손에 들어온 지 이제 2주 정도가 지났다.

티타늄 소재의 브러쉬드 메탈 측면 마감이 적용됐다. 전작의 스테인리스 스틸 유광 마감이랑 뭐가 낫냐를 두고 설왕설래가 많은듯 하지만 아이폰4, 4S 시절의 스테인리스 스틸 브러쉬드 메탈 마감에 향수를 느끼는 나는 바뀐 마감이 너무 마음에 든다. 소재를 넘어 형상도 미묘하게 바뀌었는데, 케이스를 사용하지 않고도 그립감이 너무 좋기도 하고 케이스를 착용하면 한 손 조작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생폰으로 사용하고 있다.

프레임 소재 변경에 힘입어 스펙상 무게가 10% 가량 줄었고, 케이스도 쓰지 않으니 체감 무게는 더더욱 가벼워졌다. 물론 미니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용납할 수 있는 무게다.

맥북의 실버 마감과 잘 어울리리라 기대하고 내추럴 티타늄 색상을 골랐는데 생각보다 색 차이가 크다. 그래도 티타늄 본연의 색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 같아 만족스럽다.

체감 성능과 발열은 좀 애매하다. 종합적인 AP 성능은 여전히 가장 좋지만, 핸드폰 게임을 하지 않으니 딱히 체감할 일이 없다. 48MP 고화소 촬영이나 인물 사진 연사가 막힘없이 되는 것을 보면 확실히 13 미니보다는 성능이 좋다는 것이 느껴진다.

출시 초기의 비정상적인 발열은 해결됐지만 여전히 잦은 앱 전환시 미지근하게 올라오는 발열이 있다. 빅코어 최대 클럭이 3.78GHz로 모바일 디바이스에서는 유래 없이 높은 수준인데, 앱 전환 간에 빅코어가 활성화되며 발열이 생기는 것 같다.

AAA 게임을 핸드폰에 포팅했다 하여 화제가 된 ‘바이오하자드 빌리지’를 다운받아 몇 시간 플레이해 봤다. 적당히 옵션 타협을 하면 만족스러운 그래픽으로 구동이 가능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발열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손에 땀이 나고 화면 밝기는 강제로 낮춰진다. 조작 방식을 핸드폰에 최적화하지 않고 그냥 가상 콘솔 컨트롤러를 화면의 띄운 탓에 외장 컨트롤러가 반드시 필요하다. USB-C 케이블을 모니터나 TV에 연결, 컨트롤러로 조작하면 게임하는 맛이 좀 나겠지만 그러면 또 해상도가 문제다. M2가 들어간 아이패드 프로나 맥북으로 플레이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선택이다.

드디어 8GB로 늘어난 램 덕분에 앱 리프레시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 지도 앱을 사용하면서도 안심하고 멀티태스킹을 할 수 있다. 갤럭시 S23 울트라 128GB 모델도 8GB 램을 사용하는데, 아이폰과 갤럭시S의 램 용량이 같다니 정말 격세지감.

배터리는 생각보다는 빨리 닳는 것 같다. 위에 앱 전환시 빅코어 활성화 문제 때문으로 보인다. 여러 유튜버들의 배터리 테스트 결과를 보면 대체로 14 프로와 비슷하고, 13 프로보다는 못한 것으로 결론이 모아진다. 물론 나는 미니를 사용하다 왔기 때문에 딱히 불만이 없다.

카메라는 대만족이다. 48MP 메인 광각 카메라는 동세대 갤럭시 S 울트라보다 더 큰 1/1.28인치 센서를 사용하기 때문에 센서 크롭으로 구현한 초점 거리 28/35/48mm(1.2x/1.5x/2x) 사진의 품질이 기대 이상으로 좋다.

설계상의 한계로 스마트폰 광각 카메라의 화각이 점점 넓어지고 있는데, 24mm 이외에 28/35mm를 기본 1배율로 설정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고 세 화각을 쉽게 전환할 수 있도록 구성한 UI는 정말 영리한 해결책인 것 같다.

24/28/35/48/77mm

24/28/35/77mm

28/35/48/77mm

77mm 3x

15 프로 맥스에는 완전히 새로운 120mm 5배 폴디드 줌이 들어갔지만 프로는 여전히 77mm 3배 광학 줌을 달고 있다. 센서는 11 프로부터 계속 재탕했고, 조리개가 많이 어두워 썩 품질이 좋다고 보기는 어렵다. 메인센서로 촬영하는 구간과 색감이나 밝기 차이가 두드러진다. 12 프로가 f/2.0 2x, 12 프로 맥스는 f/2.2 2.5x, 13 프로부터 f/2.8 3x 줌을 지원하는데 어째 점점 다운그레이드 되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광학 줌 자체가 없는 13 미니를 사용하다 온 입장에서 뭐라도 달려있으니 감지덕지이긴 하다.

77mm 3x

딸배 신고용으로는 이 정도로도 뭐 손색이 없다.

x3/x5/x10.5/x11~12 사이 어딘가

3x를 초과하는 구간의 디지털 줌 알고리즘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가운데 사진처럼 소위 글고리즘이 과도하게 개입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리고 디지털 줌이 들어가는 구간은 연속 촬영시 발열이 어마어마하다. 후처리가 엄청나게 들어가는 모양이다.

35/48mm, 야간모드 off

센서 크기가 커져서 수광량도 덩달아 많아졌기 때문인지 13 미니라면 야간모드가 켜질 환경에서도 일반모드로 촬영이 가능하다.

48mm, 야간모드 off

35/48mm

35mm

인물모드를 사용하지 않아도 배경 블러가 자연스럽게 들어간다.

77/35mm

치명적인 단점은 광각 카메라의 최소 초점 거리가 거의 20cm로, 48MP를 온전히 사용한 접사 촬영이 불가능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15 프로를 비롯해 대부분의 최신 핸드폰은 초광각 카메라를 사용한 접사 모드가 있지만, 아이폰 초광각 카메라는 몇년째 하드웨어를 그대로 사용해 품질이 정말 별로다. 우측 사진처럼 접사 모드를 비활성화하고 광각 카메라로 촬영할 수는 있지만 초점이 전혀 안 잡히는 모습이다. 좌측 사진처럼 그냥 2x 크롭줌이나 3x 광학줌을 사용하는 게 최선이다.

쭉 첨부한 사진 중에 초광각이 없는 이유도 그냥 초광각을 봉인하고 사용하기 때문이다. 차기 프로 라인업에는 48mp 초광각이 탑재된다는 루머가 있긴 하다.

렌즈 플레어와 고스트 또한,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갤럭시 S에 비하면 심하게 나타난다. 키노트에서 코팅을 개선했다고 언급까지 했는데, 그 코팅은 렌즈 안쪽에만 적용된 모양이다. 렌즈 최외각에 적용된 사파이어 렌즈에 코팅을 하는 것이 어려운지 아니면 그냥 원가절감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종합적으로 보면, 이번 15 프로는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휴대성, 배터리, 카메라의 삼박자가 가장 균형있게 잡힌 스마트폰이라고 생각한다. 2년 후 또 폰을 바꿀 시기가 오면 과연 마음에 드는 아이폰이 있을지 벌써 걱정될 정도로 말이다. 15 일반형과 더불어 13 미니 사용자들이 갈아타기에 가장 좋은 아이폰이 아닌가 싶다.

+ 경량화

+ 탁월한 그립감

+ 훌륭한 광각 카메라와 초점거리 변경 옵션

+ 만족스러운 디지털 줌

+ 고급스럽운 마감

+ 체감될 정도로 얇아진 베젤

+ 8GB 램, 리프레시가 거의 없음

+ 전작 대비 소폭 늘어난 배터리 지속 시간

- 애플식 환율, 너무 비싼 출고가

- 형편없는 초광각 카메라

- 망원 카메라 센서 재탕, 어두운 조리개

- 크게 개선되지 않은 렌즈 플레어와 고스트

- 특정 상황에서의 발열

- 독특함과 징그러움의 경계에 있는 카메라 섬

- 2023년에 기본 용량이 128GB